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티베트 불교 (문단 편집) === 분석적ㆍ논리적 탐구 === 티베트 불교는 비판적 분석과 판단을 중시한다. 권오민 경상대 교수의 설명처럼 불교의 '''믿음(信, śradha, 또는 勝解, adhimukti)'''은 '''확신'''이며, 이는 우선적으로 '''비판적 분석/판단'''에 의한 것이다. 문사수 중 사유의 과정에 해당하는 비판적 분석 혹은 탐구 고찰을 사택(tarka, 혹은 覺觀), 간택(pravicaya, 혹은 思惟觀察)이라고 한다. 부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金)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경전을 배우고 사유하고 수행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비판적 분석을 강조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맹신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기에 단순히 경전을 외우기보다 이치를 따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법회에서 다음과 같은 경전의 어구를 즐겨 인용하며 경전을 분석하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비구들과 지혜로운 이들이여, 연금술사가 금을 태우고 자르고 문지르듯이 나의 말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존경한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 >석가모니불[* 샨타락시타(Shantarakshita)의 논서인 《진실강요(Tattvasaṃgraha)》에서 인용한 경전 어구이다. 현존하는 경전(經, sūtra)에서는 1차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Śrīmahābālatantrarāja》라는 밀교 속전(續, tantra)에서는 거의 동일한 어구를 찾을 수 있다.] [[http://naver.me/5EfoQ4Lg|꼰촉 직메 왕뽀,《티베트에서의 불교 철학 입문》(권오민, 유리, 김대수 譯)]] 스승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스승에 대한 존경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해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날란다 대학 같은 고대 인도의 사원 대학에서는 학승(學僧)이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스승을 존경하거나 공경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제자 아리야 위묵티세나(Arya Vimuktisena, 聖解脫軍)[* 전통적인 티베트 불교 역사서에서는 아리야 위묵티세나를 바수반두의 직계 제자로 서술하고 있으나 현대 불교학계에서는 실제 제자일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본다.] 는 스승의 유식론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중관학파의 견해로 경전을 이해하였다. 티베트에서는 19세기 닝마의 학자인 주 미팜(Ju Mipham)의 제자 알락 담최 창(Alak Damchö Tsang)이 스승이 쓴 논전의 일부 내용에 반론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알락 담최 창은 "스승이 훌륭하다고 해도 가르치는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티베트 속담 중에 "사람은 공경하고 존경하되 그가 쓴 논서는 철저하게 분석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승에 대한 건전한 마음가짐과 수행할 때 의지해야 할 사의법(四依法)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http://naver.me/FcjYivcJ|제14대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 반야심경》(주민황 譯)]] 2021년 8월 한국인을 위한 비대면 법회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승과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 스승에게 실례가 되거나 스승을 거스르는 악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경전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 이유도 없이 스승의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말했다. 상술한 석가모니의 연금술사 비유나 바수반두(세친), 아상가(무착), 디그나가(진나)와 이들의 후학(後學) 격인 짠드라끼르띠(월칭)의 사례[* 바수반두, 아상가, 디그나가는 유식학파인데 비해《입중론》등에서 공성(空性)에 대한 유식의 견해를 비판한 짠드라끼르띠는 귀류논증 중관학파에 해당한다.]에서 알 수 있듯, 스승의 가르침을 아무 이유 없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숙고하고 실천하고 수행한 뒤 그 가르침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달라이 라마는 설명했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람림 맹악빠, 람림 문헌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람림 슝빠와 등 람림 수행 전승의 분화(分化)에서 알 수 있듯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스승의 말씀조차도 관찰하고 분석해야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스승이 어떤 가르침을 제공하든 제자는 그 가르침을 항상 탐구하고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며, 만약 가르침에 오류가 있다면 제자는 스승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오히려 그 가르침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의 해석도 소개했다. [[https://youtu.be/h9kHeyJRCNQ|#]]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진의(眞意)'''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意識)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미료의경(未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 >《대승열반경》 제6권 '''사의법(四依法)''' 사물의 실상을 분석할 때 분석하는 사람이 갖춰야 하는 최소의 조건은 '''사의(四依)'''이다. '의지한다[依]'는 것은 '믿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의지해야 하는 네 가지는 진의(眞意), 지혜, 법, 요의경이며,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 네 가지는 문자, 의식, 사람, 미료의경이다. 의지하고 의지하지 않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사람의 명성이 높고 낮음 등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설하는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사람과 그의 가르침 둘 중에서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사의법(四依法) 중에 가장 오해하기 쉬운 구절이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依法不依人).'이다. 이 구절은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승가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경전에만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정법(正法)인지 아닌지 여부로 법을 판단해야 하며, 법을 전하는 사람의 외모, 화술, 학력, 명성, 지위 등 부차적인 요소를 법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가르치고 있다.] '진의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러한 가르침도 문장의 운율이 아름다운지 등을 보지 말고, 진의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의를 명확하게 설한 것은 받아들이고, 오류가 있는 것은 설령 문장이 매우 훌륭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즉, 문자와 진의 둘 중에서 문자를 믿지 말고 진의를 믿어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미료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특정 목적에 의해 단지 방편으로써 설하신 언설[미료의]만을 보지 말고, 그것의 진실된 실상[요의]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진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의해 [어떤 사물이] '진실로 존재한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면 논리적 오류가 있으므로 다른 의도로 해석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궁극적 의도대로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논리적 오류가 없으므로 요의로 마땅히 믿어야 한다.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요의도 안식(眼識) 등의 근식(根識)이나 분별식(分別識)에 나타난 것만을 믿지 말고, 대상의 실상을 현량(現量)으로 보는 지혜를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https://naver.me/GD5Fkd4P|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이상의 사의법에 관한 일반적인 해설 외에 19세기 닝마의 대학승 미팜 린뽀체의 사의법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 ||{{{#!folding【"미팜의 <사의법(四依法)> 주석" 펼치기ㆍ접기】 만약 다음의 견해를 얻지 못한다면 맹인이 지팡이에 기대는 것처럼 오직 명성과 말, 또는 이해하기 쉬운 것들에만 의지하여 마침내 사의법(四依法)의 이치에 어긋날 수 있다. 1.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그러므로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해탈은 가르침(정법正法)에서 나오지 가르치는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만일 가르침이 잘 설해졌다면 누가 설하였든지 상관없다. 심지어 선서(善逝, sugata) 역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백정으로도 화현한다. 만일 대승법(大乘法)과 같은 정법의 의미와 반대되는 말을 한다면 아무리 말솜씨 좋은 사람이라도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 마치 부처의 모습을 한 마라와 같이. 2.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법을 공부하거나 사유할 때 항상 말에 의지하지 말고 뜻에 의지하라. 만일 뜻을 이해했다면 어떤 식으로 설하여졌든지 모순이 없다. 만일 설하는 이가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이해했다면 그 때 비로소 각각의 단어와 표현에 대해 사유하라. 마치 코끼리를 찾은 후에 비로소 코끼리의 발자국을 찾아 나서듯이. 만일 뜻을 잘못 이해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말들을 사유한다면, 생각이 다할 때까지 고민을 멈추지 못하겠지만, 그저 진정한 뜻에서 멀어지고 또 멀어질 뿐이다. 마치 아이들의 놀이처럼 기진맥진해진 채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나 ‘그러나’ 같은 한 단어일지라도 맥락에서 벗어나면 끝없이 많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뜻을 이해했다면 더 이상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킬 때 어리석은 이들은 손가락만 쳐다보듯이, 바보들은 말에만 집착하여 자신들은 잘 이해하였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는 착각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3. 미료의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에 의지하라. 뜻을 파악할 때 무엇이 미료의(未了義)이고 무엇이 요의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불료의에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진정한 요의에만 의지해야 한다. 일체지자(一切知者, sarvajña)께서는 배우는 이들의 근기와 성향에 맞게 가르치셨다. 그는 사다리의 가로대들처럼 여러 단계의 승(乘)을 소개하셨다. 여덟 종류의 암시와 간접적인 가르침[* 4종의 암시적인 가르침과 4종의 간접적인 가르침.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https://www.rigpawiki.org/index.php?title=Eight_kinds_of_implied_and_indirect_teachings|#]]]과 같이 그는 마음에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지혜롭게 설하셨다. 만일 미료의의 가르침을 (의도와 상관 없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 가르침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나 미료의의 가르침은 (방편으로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설할 수 있다. 4. 지식에 의지하지 말고 지혜에 의지하라. 만일 요의의 가르침을 수행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세속의 이원적(二元的)인 마음에 의지하지 말라. 이원적인 마음은 언어와 개념들을 쫓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지혜에 의지하라. 개념적인 생각과 함께 작용하는 것이 바로 세속적인 마음이다. 세속적인 마음은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하는 대상을 포함하는 특성이 있다. 그런 식으로 주객을 나누는 이원적인 모든 생각은 그릇된 것이며 절대 진정한 현상의 본성(本性)에 다다르지 못한다. 실재든지, 비실재이든지, 실재이면서 비실재이든지,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든지 그러한 개념은 어떻게 생각하든지 여전히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마음에 품는 어떤 생각이든지 그것들은 마라의 지배 아래 있다.이러한 가르침은 경전에 나와 있다. 어떤 부인(否認)이나 단언(斷言)에 의해서도 개념을 다 제거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부인하거나 단언함 없이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한다면, 바로 해탈이다. 비록 주체와 객체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없지만 스스로를 비추는 본연의 지혜가 있다. 그리고 존재와 비존재, 존재이면서 비존재,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모든 생각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은 최상의 본초(本初)적인 지혜(Yeshe, Primodial wisdom)라고 한다. 요의는 방편법문에 의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비개념적인 알아차림(awareness)의 지혜의 대상으로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부인과 단언, 존재와 비존재와 같은 개념적인 양 극단에 얽매여있는 한 세속적인 마음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초월적인 지혜를 경험하는데 도달하였다면 모든 이원적인 생각은 진정되고 현상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모든 부정(否定)과 정립(定立), 또는 부인과 단언에서 벗어나 진정한 법(Dharma)의 심오함에 이르게 된다.[[https://www.rigpawiki.org/index.php?title=Four_reliances#4._Do_not_rely_on_the_ordinary_mind.2C_but_rely_on_wisdom|#]] }}}|| >■ '''삼소량분(三所量分) གཞལ་བྱའི་གནས་གསུམ། : 세 가지 존재 방식''' >① '''མངོན་གྱུར། [ㅇ왼규르] 현전(現前)''' = 현전분(現前分) >② '''ལྐོག་གྱུར། [꼭규르] 비현전(非現前)''' = 불현전분(不現前分) = 은폐분(隱蔽分) >③ '''ཤིན་ཏུ་ལྐོག་གྱུར། [씬뚜 꼭규르] 극비현전(極非現前)''' = 최극은폐분(最極隱蔽分) 앎의 대상에는 크게 '''현전(現前), 비현전(非現前), 극비현전(極非現前)''' 세 가지가 있다. '''현전'''은 ''''지각 가능한 명백한 현상''''으로 논리를 통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 현상들은 직접적인 감각적 지각인 현량(現量)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터득할 수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삶과 죽음, 계절의 변화 같은 거친 무상(無常)은 현전에 해당한다. '''비현전'''은 ''''일부분만 지각할 수 있는 현상''''이다. 비현전은 요가수행자[* [[요가]](Yoga)는 신체적, 정신적, 영적 수행을 통칭하는 말로 궁극적인 요가의 목적은 마음, 의식의 변화에 있다. 요가는 비단 요가학파 뿐만 아니라 인도 종교와 사상 전반에 걸쳐 통용되는 용어이다.]가 아닌 일반인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없으므로 논리적 추론인 비량(比量)을 적용하여 확립해야 한다. 이때의 분석 대상은 경험에 근거한 추론적 인식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찰나생멸하는 미세한 무상이나 무아, 공성 등이 비현전에 해당한다. '''극비현전'''은 ''''전혀 지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극비현전은 일반인의 현량으로도 인식할 수 없고, 이해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비량을 이용해 검증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당한 경전적 권위, 즉 성교량(聖敎量) 내지 교증(敎証)에 의존해야한다. 교증에 의존하더라도 경전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가령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텍스트 비평을 통해 번역된 경전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도 검증해야 한다. 교증을 거친 후에는 경전 내용 자체가 삼지작법(삼단논법) 등의 논리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검증하는 이증(理証)을 거친다. 이는 믿음에 기반한 논리적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부모의 말에 의지해서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고, 역사적 기록에 의지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을 알 수 있는 것 또한 극비현전에 해당한다. 경전에서는 극비현전의 예로 중생의 업력(業力), 부처의 사업(事業), 진언(眞言)ㆍ약(藥)ㆍ물질의 힘, 유가사(瑜伽師)의 유가(선정禪定)의 경계 등 네 가지 불가사의한 대상을 언급한다. 여기서 업력, 다시 말해 업의 인과(因果) 작용은 오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부처만이 완벽히 알 수 있으며, 아라한도 인과를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다만 개별적인 사태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업의 경과가 아닌, 업이 작용하는 일반적인 원리인 업설(業說)에 대해서는 《구사론》 등 여러 논서에서 상세히 밝혀놓았다. [[http://naver.me/5OnQp3TG|제14대 달라이 라마, 《달라이라마, 수행을 말하다》(이종복 譯)]] 경설을 근거로 받아들이는 방식도, 예를 들면 '보시를 행하면 재물을 얻는다. 경에서 이와 같이 설하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 경설 자체를 논증인(論證因)으로 세워서 해당 내용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론의 언설이 현량(現量)과 논리로써 오류가 없고, 경설의 구절에 직간접적인 모순이나 전후의 모순이 없으며, 설법자에게 다른 특별한 의도가 없는 등의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날란다 학자들의 전통에서는 제법의 체계를 확립할 때, 경설이나 타당한 말에 의지하는 신허비량(信許比量)보다 사세비량(事勢比量)을 중시하였고, 논리에 의지하는 사세비량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현량을 더 중시하였다. 이러한 우선순위를 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https://naver.me/GD5Fkd4P|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 '''사종도리(四種道理)''' >'''① 법이도리(法爾道理)''' >'''② 작용도리(作用道理)''' >'''③ 관대도리(觀待道理)''' >'''④ 증성도리(證成道理)''' 분석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해심밀경》, 《대승아비달마집론》, 《유가사지론》 등의 보살경론에서는 '''사종도리'''를 설하고 있다. '''법이도리'''는 사물의 실상 그대로를 토대로 한, 각각의 법의 특성이나 자성 또는 법성을 의미한다. '''작용도리'''는 그러한 법이도리를 토대로 하는, 각각의 법성의 본질과 부합하는 여러 가지 작용을 의미한다. '''관대도리'''는 작용도리를 토대로 하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 즉 인과관계, 부분과 유분(有分)의 관계,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 대상 셋의 관계 등 의존하는 실상을 의미한다. '''증성도리'''는 앞의 세 가지 도리를 토대로 분석할 때,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도 없어야 한다'와 같은 논리를 세워서 소립(所立)을 논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증성도리라고 한다. 사종도리 중 작용도리와 관대도리 이 둘의 핵심 내용인 '''인과와 연기의 법칙'''은 불교 전통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치이다. 크게는 기세간과 유정세간의 생성에서부터 작게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개별적 상황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오직 인과연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의 교의체계에서는 중생이 업과 번뇌의 힘에 의해 윤회를 떠도는 방식에서부터 윤회의 원인과 조건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까지 오직 인과의 법칙으로 성립된다. 역사적 기록이나 현실적 상황 그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과의 법칙은 불교 철학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https://naver.me/GD5Fkd4P|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dalai-group-102510.jpg]]}}} || || 2010년 스탠포드대 "자비와 이타주의의 과학적 탐구" (“Scientific explorations of compassion and altruism.”) 회의에서 과학자들[* 제임스 도티(James Doty), 폴 에크만(Paul Ekman), 에밀리아나 사이먼-토마스(Emiliana Simon-Thomas), 아서 자욘스(Arthur Zajonc) 등]과 손잡은 달라이 라마. || 티베트 불교의 분석적이고 지성적인 성향은 과학자들과의 적극적 교류에서도 드러난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https://www.dalailama.com/news/2017/attending-a-science-symposium-and-visiting-tibet-house|#]], 데이비드 봄(David Bohm)[[https://www.infinitepotential.com/|#]],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J. Davidson)[[https://centerhealthyminds.org/news/the-dalai-lama-and-scientists-unite-to-study-meditation|#]],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https://g.co/kgs/erYdsf|#]] 등 세계적인 뇌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인지과학자, 정신의학자, 물리학자들이 달라이 라마, 까르마빠와 같은 티베트 불교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법문에서 양자역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등을 예시로 자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양자역학과 불교의 중관 사상 모두 '사물이 실제로는 관찰자에게 인식되는 것처럼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불교 경전에서 언급된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https://m.btnnews.tv/news/articleView.html?idxno=23713|#]] 달라이 라마는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우리 불자들이 21세기의 불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은 (21세기 불자들이) 현대 과학을 포함하여 현대와 현대 세계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의 기반을 갖춰야 하고 그에 덧보태어 부처님의 메시지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자들에게 현대 과학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5/06/2011050601638.html|#]] 또한 달라이 라마는 분석과 탐구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과 불교 논리학에 기반하여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가 가능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달라이 라마의 노력에 대해 불교계나 과학계 양측 모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달라이 라마가 2005년 신경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회인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 SfN)의 연례 학술회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의 참석에 관한 논란이 벌어져 (달라이 라마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중국 출신이 다수 포함된) 5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초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대 측은 "달라이 라마의 명상에 대한 견해는 주관적이며, 명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 시점에 신경과학이 무모하게 정신적 문제에 접근할 경우 학문의 신뢰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반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후 '명상을 통한 의식의 연구'를 주제로 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신경과학자들은 그의 참석이 매우 적절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학회의 여론은 그의 방문을 전적으로 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10/5751/1104|#]] [[https://pubmed.ncbi.nlm.nih.gov/16293731/|#]]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Neuroscientists-Welcome-Dalai-Lama-With-Mostly-Open-Bhattacharjee/9b62720df508ac486c0dca71b5504ed9a61a9841|#]] 2005년 당시 반대 측 과학자들이 내세운 '과학적 근거 부족'이란 명분은 이후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활성화로 인해 그 정당성을 상실하였다. 가령 불교 명상에서 파생된 [[마음챙김]](mindfulness)의 경우 1966년부터 2021년까지 마음챙김에 관한 16,581건의 출판 논문이 확인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 출판물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있었다. 출판물의 거의 절반(47%)이 심리학, 약 5분의 1(20.8%)이 정신 의학 출판물이었다. 대부분의 출판물은 서양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대표성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연구 트렌드(2016–2021)는 메커니즘과 조정자(mechanisms and moderators), 장기간 명상(long-term meditation), 신경과학적 연구(neuroscientific studies), 스마트폰/온라인을 통한 중재 전달(smartphone/online delivery of interventions)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2671-021-01681-x|Anuradha Baminiwatta & Indrajith Solangaarachchi, 《Trends and Developments in Mindfulness Research over 55 Years: A Bibliometric Analysis of Publications Indexed in Web of Science》]] || [youtube(PMsekm5LndI)] || || 《불교 과학 철학 총서-1.물질세계》한국어판 봉정 법회 관련 [[미국의 소리|VOA]] Tibetan 영상 《His Holiness the Dalai Lama launched the Korean Translation of Buddhist science and philosophy》 ||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인 날란다 대학(사원)의 설립 목적은 ‘불교학 연구와 진흥’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불교학뿐 아니라 철학, 문학은 물론이고 천문학이나 의학, 약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와 수업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불교는 원치 않는 고통의 뿌리가 대상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에 있다고 본다. 불교의 근본적 동기와 주된 목적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구경(究竟)의 안락(安樂)이며, 이를 위해 대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는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란 것이 처음부터 명백했다. 결국 세상의 본질,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아는 게 ‘고통’에서 해방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말이다. 불교 경전이 성립되고 계율이 정비되자 붓다의 제자들이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것도 세상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 부파불교 시대, 아비달마가 융성하기 시작하면서 불교 논서들에 유달리 자연과학적 지식이 자주 등장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날란다 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역시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 경론의 가르침을 크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혹은 과학’, ‘그와 관련된 철학’, ‘수행의 차례’로 분류하였다. 이 중 과학과 철학 두 분야는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며 시대적 요구와도 잘 맞는 학문이라고 여긴 달라이 라마는 2011년 《불교 과학 철학 총서》의 편찬을 기획한다. 이에 티베트 최고의 학승인 게셰 7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만들어진다. 편집위원들은 날란다 17 논사들의 저작, 그리고 여타 아비달마 논사들의 저작을 모두 검토하고 그 중에 과학,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 선별, 분류한 후 주석과 해설을 달았다. 총서 1권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세계는 극미(極微)의 세계에서 [[천체]](天體)까지, 즉 마음을 제외한 외부 세계 전부를 가리킨다. 특히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 시간과 공간, 뇌를 비롯한 인간의 신체가 주 대상이다. 또한 서문에서는 불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룬다. 영어, 중국어(번체)에 이어 전세계에서 3번째로 《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권 '물질세계'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근간으로 2권 '수행(가제)', 3권 '철학(가제)'이 있다. [[https://naver.me/GD5Fkd4P|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게쎼 텐진 남카 譯)]] [[http://www.bulkw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885|#]] 3권 '철학적 학파(Philosophical Schools)' 영문판에는 함형석 전남대 교수도 공동 영역(英譯)자로 참여하였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xMHvzgEACAAJ&dq=Science+and+Philosophy+in+the+Indian+Buddhist+Classics,+Vol.+3&hl=ko&sa=X&redir_esc=y|《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Indian Buddhist Classics, Vol. 3: Philosophical Schools》]] 그 밖에 티베트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를 담은 국내 서적으로 [[http://naver.me/F7xqoHcr|《과학과 불교(한 원자 속의 우주)》(이해심, 삼묵 譯)]], [[http://naver.me/FrK1o2Ud|《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남영호 譯)]] 등이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BHH9d2kmt7o)]}}} || || 티베트 불교 강원의 과학 교육에 대한 다큐 《100 Year Project:A Film》 ||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https://www.mindandlife.org|마음과 생명 연구재단(Mind & Life institute)]]의 강연, 대담, 저서 그리고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의 교류를 담은 다큐 영화 [[https://m.imdb.com/title/tt7749892/|《The Dalai Lama: Scientist》]]등에서 티베트 불교와 과학자들 간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http://www.scienceformonksandnuns.org/|Science for Monks & Nuns]] 프로젝트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에게 과학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사업이다. [[스미스소니언 재단]] 등에서 파견된 교육자와 과학자들의 지도 하에 현재 7개 과학 센터에서 300명 이상의 승려들이 3년 과정의 과학 리더쉽 프로그램을 수료하였다. [[https://global.si.edu/projects/science-monks|#]] 또한 [[에모리 대학교|에모리대]]와 협력하여 [[https://tibet.emory.edu/|Emory-Tibet Science Initiative(ETSI)]]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티베트 불교 강원에 과학 과목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하여 승려들에게 지속적으로 과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3> '''2013년 제26회 마인드 앤 라이프 컨퍼런스: 마음, 뇌, 물질 (한글 자막 영상)'''[* 동영상 설명에는 개최연도가 2016년으로 기재되어있지만, 정확한 개최 일시는 2013년 1월 17-22일이다.] || || Day1 am || 실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불교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 || [[https://youtu.be/y0pmkKnCB38|[[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 Day1 pm || 과학의 범위: 지식과 실재의 본질 || [[https://youtu.be/DSVb4_ecIu0|[[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 Day2 am || 양자물리학, 상대성, 우주론 || [[https://youtu.be/QEeQJhVgGgY|[[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 Day2 pm || 실재의 본질 || [[https://youtu.be/PE9CcR6dpSI|[[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 Day3 am || 뇌 변화하기 || [[https://youtu.be/yV75s3RRXWw|[[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 || >'''■ 《깔라마 경》에 대한 오해''' > >>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이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 >>"깔라마들이여, 그대는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 받지 않을 것이며, 이런 법들은 지자(智者)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된다.’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구족하여 머물러라."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탐욕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성냄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깔라마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의 내면에서 어리석음 없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그에게 이익이 되겠는가, 손해가 되겠는가?" >>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 >>[[http://naver.me/FR1gqzbC|《깔라마 경(A3:65)》(대림 譯)]] > >상좌부 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에 속한 《깔라마 경》은 이른바 '부처의 자유 탐구 헌장(the Buddha's Charter of Free Inquiry)'으로 잘 알려진 경전이다. 모든 교조주의, 전통, 편협함으로부터의 자유를 논하는 본 경전은, 그러나 유명세만큼이나 잘못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적인 인용을 바탕으로 종종 《깔라마 경》은 급진적인 회의주의나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인 진리 창조를 옹호하는데 악용되곤 한다.[[https://en.m.wikipedia.org/wiki/Kesamutti_Sutta|#]] 이에 관하여 현대 테라와다 불교의 스승 빅쿠 보디(Bhikkhu Bodhi)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문맥에서 벗어난 단 한 구절의 인용을 근거로, 붓다는 '모든 교리와 신앙을 일축하는 실용적인 경험주의자'가 되어버렸고, 그의 법은 단순히 자유사상가의 진리에 대한 도구가 되어 각자 자기 멋대로 수용하고 거부하는 상황을 초래하였다. >>---- >> [[https://web.archive.org/web/20051119094429/http://www.accesstoinsight.org/lib/authors/bodhi/bps-essay_09.html|Bhikkhu Bodhi, 《A Look at the Kalama Sutta》]] > >《깔라마 경》은 진리에 대한 판단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깔라마 사람들을 위해 즉각적이고 도덕적이며, 유익하고 본질적인 가치인 '탐진치(貪瞋痴)의 소멸'을 우선 기준으로 제시한 경전이다. 《깔라마 경》에서 석가모니는 논리와 추론, 사유만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였지만, 그러한 지적 작용들 자체를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은 해당 경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 >《깔라마 경》을 독해하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논리적 사고는 요구된다. 바른 법을 '이익과 행복의 획득 수단'으로 정의하고, 이익과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탐진치를 소멸해야 하며 따라서 바른 법과 바르지 않은 법을 탐진치의 소멸 여부로 판단하는 《깔라마 경》의 전개 역시 일종의 연역적 추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깔라마 사람들의 삼보에 대한 귀의 부분에서 알 수 있듯, 건전한 사유에 기초한 믿음에 대해서도 《깔라마 경》은 부정한 바 없다. > >>차연성(此緣性)을 알고서 사견(邪見)의 그물인 분별(分別)을 벗어난 사람은, 탐욕, 미움, 우치를 벗어나 [번뇌에] 물들지 않은 열반으로 나아간다. >>---- >>《공칠십론》(이지수 譯) >>[[http://naver.me/Fnnl0t0h|이지수, 《인도 불교철학의 원전적 연구》]] > >석가모니는 자신의 탁월한 지성을 적극적으로 중생 교화에 활용하였는데, 단적인 예로 석가모니가 설한 연기법은 독립된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의존적인 존재를 정립시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동시에 제거하기 때문에 "왕(王)과 같은 논리(rigs pa'i rgyal po)"로까지 일컬어진다. 용수보살이 《공칠십론》에서 밝혔듯이 연기를 통해 다른 것에 의존한 것(차연성), 즉 공성을 알게 되어 사견(邪見)과 그로 인한 탐진치를 소멸할 수 있기 때문에 붓다의 교설인 연기는《깔라마 경》에서 말하는 유익한 법의 기준에 완벽히 부합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